상담은 일련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이루어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일반적 대화와 달리 상담은 목표가 있는 대화라고 볼 수 있다. 상담자와 내담자는 상담 초기부터 몇 가지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가 달성되는지의 여부에 따라 상담 활동을 유연하게 변화시켜야 한다.
상담목표의 구분
상담의 목표는 일반적으로 자기 탐색, 자기 이해, 보다 넓은 자기 인식 그리고 자기실현이라는 용어로 표현될 수 있다. 하지만 내담자는 이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상담소를 찾기보다는 당장의 문제를 해결을 위해 찾아온다. 예를 들어, 강박행동, 발표불안, 부부갈등, 심한 우울로 인한 무기력감 등 내담자가 급하게 호소하는 문제의 종류는 셀 수 없다. 심리적인 문제는 속성상 문제 자체만 해결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가능해 보이더라도 결국엔 재발하는 경우가 많다. 강박행동 등 여러 심리적 문제들이 도움을 통해 일시적으로 사그라든다 하더라도 근본적 문제에 대한 접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다시 반복되어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재발했을 때 그전보다 악화된 상태로 나타나 내담자는 더 절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담의 목표를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 상담의 일차적 목표는 현재 내담자가 호소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당면한 문제의 해결을 넘어서 내담자 좀 더 인격적으로 성숙해지고 유연해지며 자기실현을 하게 되는 것을 상담의 이차적 목표 또는 궁극적 목표라고 한다. 두 가지 목표는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때로는 순차적으로 또 때로는 두가지를 동시에 추구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목표에 대해 상담자와 내담자가 서로 분명하게 인식하고 합의를 이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담자와 내담자 간에 분명한 인식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상담과정은 원활해지지 않는다.
목표설정의 요령
뚜렷하고 구체적인 목표는 상담과정에 강력한 추진력을 제공한다. 내담자가 호소하는 문제 증상을 듣고 상담자는 문제 증상에 대한 이해를 제공하고 내담자가 문제 해결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목표를 세우고 달성할 수 있을지 생각하도록 유도한다. 상담의 목표는 암묵적으로 합의될 수도 있지만, 대개는 언어적으로 명백하게 드러나게 하는 것이 좋다. 상담자는 상담초기에 내담자에게 "이 상담에서 우리가 달성해야 할 목표를 무엇으로 정할까요?"라고 물을 수 있다. 내담자가 대답한다면 상담자는 이를 기록해 놓을 수 있다. 내담자가 위와 같은 질문에 답하기 어려워한다면 상담자와 협의하여 목표를 구체화할 수도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상담의 목표는 구체적일수록 상담은 힘있게 진행될 수 있다. 대개 분명하고 구체적인 목표는 행동적인 용어로 기술된다. 예를 들어, 내담자가 상담의 목표를 "우울감이 줄어들고 자신감이 생겼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고 하자. 실제로 이런 변화가 일어날 수 있지만 상담자와 내담자가 이런 변화를 확인할 구체적인 행동이 없다면 목표가 달성되었는지, 얼마만큼 달성되었는지 알기 어렵다. 반면 목표설정 대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하자.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고 대화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이 내 의견에 반대하더라도 내 주장을 할 수 있으면 좋겠고, 거절을 하고 나서도 그 사람과의 관계를 불편해하지 않고 그 관계가 전처럼 유지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대화에서는 내담자가 바라는 행동의 변화가 구체적이고 분명하다. 이 목표를 향해 어떻게 해야 할지 깊이 논의할 수 있고 상담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이 목표를 기준으로 점검할 수도 있다. 또한 목표와 관련이 없는 주제의 대화에 대해 차단할 수 있고, 목표달성 여부로 상담을 종결할지 아니면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여 상담을 계속 진행할지를 결정할 수 있다.
목표설정에 있어 한 가지 더 중요하게 고려해야할 점은 상담목표를 설정할 때 현실적인 목표를 세울 수 있게 조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적이지 않은 달성불가능한 목표는 내담자에게 또 다른 좌절을 줄 수 있다. 내담자가 먼저 목표의 비현실성을 깨닫게 유도하고 현실적인 목표 설정을 위해 조력해야 한다. 상담소에 방문할 때 내담자들은 '내가 과연 좋아질 수 있을까?', '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상담자와 함께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목표들을 세우면서 내담자는 의구심에서 벗어나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상담목표와 상담의 흐름
상담과정은 상담목표 달성을 향한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상담에는 한 가지의 목표만 있는 것이 아니며, 최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거쳐 가야 하는 수많은 하위 목표가 있을 수 있다. 상담이 상담목표를 따라 움직인다고 볼 때 한 가지 목표를 달성하면 다음 목표로 움직이기 위해 다시 새로운 합의가 필요하다. 상담자는 이 과정이 자연스럽게 흘러갈 것이라 기대하면 안 된다. 다음의 사례를 보자. 평소 공부할 때 손톱을 뜯는 것이 신경 쓰여 공부에 집중할 수 없다고 호소하는 내담자가 있다. 내담자는 대략 5회기 정도의 상담 후에 손톱을 뜯는 것이 공부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는 집착이 자신의 공부를 방해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공부를 더 많이 하고 싶으면 손톱을 뜯는 것에 집착할 게 아니라 평소에 친구들과 노는 시간을 줄여야 했다. 상담이 진행되면서 내담자는 손톱을 뜯으면서도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내담자가 6회기 이후에 그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상담시간에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하였고, 자신이 완치가 된 건지 궁금하다는 질문을 반복적으로 하였다.
이런 내담자의 반응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일종의 국면 전환기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담자는 자신의 증상문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목표를 달성하였다고 느끼기 때문에 이제 어떤 목표를 가지고 상담을 계속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상담의 여행 중 한 목적지에 도착한 이후 새로운 이정표를 찾지 못해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상태와 같다. 이때 상담자는 내담자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을 다음과 같이 반영해 줄 수 있다. "이젠 어느 정도 자신의 증상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는데 앞으로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 길을 잃어버렸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이에 내담자는 "네, 제 증상이 성격과 관련이 있는 걸까요? 성격에 대한 얘기를 계속해야 되는 건가요? 저는 제 성격이 좋은 점도 많이 있고 이것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라고 대답하였다. 이후 상담은 내담자의 성격에 대한 주제로 옮겨졌고, 내담자는 자신의 성격 및 성격에 미치는 가족 배경에 대해 보고하였다. 해당 회기가 끝날 무렵 상담자는 "이제 우리 이야기의 주제가 바뀐 것 같군요."라고 반응하였다. 내담자는 이후 상담에서 어떤 작업을 진행해야 하는지 좀 더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상담자가 직접적으로 "증상에 대해 조절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제 성격이나 성장과정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라고 개입하지 않았지만 내담자와 함께 새로운 주제를 이야기하기로 합의하게 되었고 상담은 새로운 추진력을 얻었다. 상담은 흐름이며, 상담의 흐름이 막힌다는 느낌이 들 때 상담자는 이를 무시하고 그냥 두서는 안되며, 적극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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